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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ssul

밤은 무었을 낚으려 하는가

레벨 ㅎㅍㄹ초ㅠ
2시간 21분전 301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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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의 절정은 단연 밤낚시라 하겠다.

밤낚시를 혼자 다닌 적이 있었다. 해가 저물면 가정이 있는 꾼들은 주섬주섬 대를 걷고 떠났다. 여름도 그렇게 떠났다. 가을은 비명도 없이 깊어가고, 나는 여전히 강가에 혼자 앉아 밤낚시를 했다.

청평댐을 지나온 강물과 구암리에서 흘러내려온 구운천이 만나는 북한강 하류의 강 언저리였다. 강낚시라는 것이 한여름 장마 때나 잠깐 반짝이지만, 나는 시서늘해지는 강가에 혼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밤이 되면서 기온이 급격히 내려갔다. 가스렌지를 켜고 오들오들 떨며 물에 젖은 손을 비비고 있는데, 자정이 다 된 시각에 노인 한 분이 등장했다. 낚시가방을 메고 야심한 시각에 강을 찾아온 노인은 보기보다 씩씩했다. 손전등도 켜지 않은 채 낚시대를 척척 펴고, 떡밥을 개어 강물에 풍덩 소리가 나도록 던지더니 커다란 비닐을 펼친다.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태초부터 배추애벌레가 그리하도록 예정되었듯이, 비닐에 누워 온몸을 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노인은 비닐 속에 든 번데기 상태로 코를 골며 잠에 들어갔다.

강호에 고수가 많다는 말이 무협지에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의 코 고는 소리를 피해, 짐을 꾸려 매바위라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밤낚시의 묘미는 자신의 숨소리에 질식할 만큼 고적하여야 했다. 낭떠러지에 비죽 솟은 바위가 있는데, 아래로는 시퍼런 강물이 소용돌이를 치며 흘렀다. 수심이 깊어 네 칸대로도 모자라 덧줄을 길게 달아야 겨우 찌가 섰다. 경사가 급한 바위에는 앉을 곳도 만만찮아 낭떠러지 끝에 가까스로 앉았는데, 시퍼런 물이 발 끝에 닿을듯하다. 밤이 되며 거칠던 수면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발을 딛고 걸으면 강을 건널 듯 수면은 유리처럼 반들거렸다. 물소리마저 뚝 끊긴 시퍼런 물속에서 불쑥 손이 나와 내 다리를 끌어당길 것 같은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밤이 물들인 암청의 깊은 물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함으로 나를 유혹했다. 나는 자꾸 그 속으로 걸어들어가려는 자신을 안간힘을 다해 막아섰다.

그때 갑자기 '쾡쾡' 무슨 쇠를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퍼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산자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들어보니 산중턱에 불이 켜진 집에서 쇳소리와 무어라 중얼거리는 여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들어보니 굿을 하는 듯했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굿당에서 무어라 한참 떠들던 무녀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훈아의 <녹슬은 기찻길아>였습니다. 무당들이 <왔구나아,,,,배뱅이가 왔구나아> 하는 굿거리는 들어봤어도, 트로트는 처음이었다. 잠시 후, 무녀의 나레이션이 이어졌다.

"아이고, 어머니, 내가 어머니를 두고 어떻게 떠납니까.... "

그런데 이건 남자 목소리였다. 가만히 들어보니, 며칠전에 내가 앉아 있는 강에 빠져죽은 청년의 넋을 달래는 굿이었다. 청년이 빙의된 무녀의 눈물 섞인 넋두리와 노래도 끝났다. 그리고 굿을 끝낸 무녀와 화랭이가 밖으로 나와, 강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나와 멀지 않은 강가에서 종이배에 촛불을 켜서 띄우기 시작했다. 줄줄이 불을 켠 종이배들이 내 낚시대 근처로 떠내려왔다. 불꽃에 닿기만 하면 낚싯줄은 모조리 끊길 판이었다.

불을 켠 종이배가 지나갈 때마다 나는 장대같은 낚시대를 들어올리기 바빴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녀는 커다란 자박지를 가져와 강물에다 엎는데,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가만히 살펴보니 손바닥만한 붕어들이었다. 한쪽에서는 사자의 천도를 위해 물고기를 방생하는데, 그 곁에서 미늘이 날카로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처지가 궁색해졌다. 나는 공연히 죄를 지은 기분에 숨을 죽인 채 딴전만 부렸다. 그리고 무녀가 풀어준 붕어들이 내가 달아놓은 지렁이를 삼키기를 바라는 마음도 추호도 없던 것은 아니었다. 무녀는 쌀알인지, 소금인지를 내 주변의 강에 휘파람 소리를 내며 한차례 뿌려대고는 새파랗게 젊은 화랭이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방은 다시 칠흑같이 어두워지고, 물은 시퍼렇게 질려 흘렀다. 두시가 넘자, 돌연한 바람이 거세게 불며 네칸이 넘는 낚싯대를 흔들어댔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려는 낚싯대를 간신히 붙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 무언가 그 시퍼런 물 속에서 내 낚시대를 낚아채려고 허우적거리는 두 손이 내보였다. 나는 그것이 '녹슬은 기찻길아'를 부르던 청년이라고 직감했다. 그리고 안간힘을 쓰며 붙들고 있던 내 낚싯대에서 주저없이 손을 놓았다. 기다란 네칸짜리 낚싯대는 누군가 있는 힘을 다해 낚아채듯이 밤의 강물 속으로 단숨에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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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오우예끼님의 댓글

레벨 오우예끼
11분전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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